'관리급여' 도입 신중해야
- 윤효상
- 2025년 12월 17일
- 2분 분량
재정 논리 앞세운 관리급여 추진, 의료의 질 하락과 임상적 자율성 침해 우려 현장 의견 배제한 속도전식 제도 개편은 환자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 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과 의료 서비스 효율화를 명분으로 '관리급여' 체계 도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현행 행위별 수가제가 과잉 진료를 유발하고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진단 아래, 진료비 지불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인구 고령화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압박이 현실적인 과제라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의료 현장의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 없이 속도전으로 추진되는 관리급여 도입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관리급여의 핵심은 의료 행위의 '양'이 아닌 '질'과 '성과'를 중심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으로, 포괄수가제 확대와 신포괄수가제 개선, 나아가 인두제 요소 도입까지 거론된다.
이론적으로는 불필요한 검사와 처방을 줄이고 재정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지만, 현실 의료 현장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
가장 큰 문제는 '관리'의 주체가 재정을 쥔 정부, 즉 보험자가 된다는 점이다.
의료계가 우려하는 핵심은 임상적 자율성의 침해다.
의료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환자 개개인의 상태와 여건에 따라 최적의 치료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표준화된 진료 지침과 예산 범위 안에서만 진료를 강제하는 관리급여 체계가 도입될 경우, 의료진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진료의 획일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의사가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보다 삭감을 피하기 위한 방어적 진료를 선택하거나, 정부가 정한 가이드라인에만 의존하는 소극적 진료가 확산될 위험도 크다.
특히 복합 질환을 앓거나 표준 치료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 환자들은 필요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고 의료 사각지대로 밀려날 수 있다.
재정 절감이 정책의 최우선 목표가 되는 순간, 의료의 질 하락은 피하기 어렵다.
관리급여 도입은 의료기관 간 양극화도 심화시킬 수 있다.
복잡한 행정 절차와 데이터 관리를 감당할 수 있는 대형병원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반면,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중소 병·의원은 제도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동네 의원 중심의 1차 의료 붕괴로 이어져 의료 접근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해외 관리의료 사례 역시 중요한 반면교사다.
미국의 HMO(건강관리기구) 모델은 의료비 통제 측면에서는 일정 성과를 거뒀지만, 과소 진료 논란과 환자의 의사 선택권 제한, 보험사의 과도한 개입 등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한국의 높은 의료 접근성과 질을 유지하면서 재정 건전성까지 확보하는 것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는 관리급여 도입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행위별 수가제에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준비 없는 관리급여 도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의료는 재정 논리 이전에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영역이다.
성급한 제도 시행에 앞서 의료계와의 충분한 소통과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한국 의료 현실에 부합하는 단계적이고 신중한 접근, 그리고 의료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재정 효율성을 함께 달성할 수 있는 '한국형 관리 모델'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그 후폭풍은 의료 현장과 환자 모두가 감당해야 할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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